전통의상

전통한복체험

우리 나라 고유의 의복.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전통한복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예약문의 033-336-1111

우리 나라 고유의 의복.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

우리 나라 고유의 의복. 전통한복이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으로, 우리 고유 의복인 치마·저고리·바지·저고리·두루마기에 조끼·마고자가 포함된다. 전통의 선을 현대부터 그어보면, 영·정조시대 혜원(蕙園)신윤복(申潤福)·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 나타난 한복까지 그을 수 있으며, 다시 조선초기·고려·통일신라를 거쳐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본복(유·고·상·포)까지 이어진다. 더 나아가 가시적인 자료는 없으나 고조선까지도 이을 수 있다고 본다.

기본복(基本服)의 원류는 스키타이계이며 북방민족의 복식이다. 고대 한국의 복식문화는 주변국가보다 매우 발달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우리의 유(?)와 고(袴)를 서기전 4세기경에 중국의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융복(戎服)으로 채용하였다. 후한대(後漢代)에 고습(袴褶)이라고 불렸으며, 위진(魏晉) 이후 천자(天子), 백관의 융복과 사인(士人)·서민복으로, 당대(唐代)에는 삭망(朔望) 때 조회복(朝會服)으로도 입혀졌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집단으로 이주할 때 입고 간 우리 옷(유·고·상·포)을 계속 입었으며 원주민에게도 전했음을 하니와(稙輪)로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말기 짧은 저고리가 유행되고 고름이 생겼다.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긴저고리는 계속 서민들이 착용하였고, 조선 중기까지도 계속되면서 옆 트임이 생기고 겉옷화 한다. 고려시대에도 이 두가지 입음새가 계속되다가 고려말에는 우리 전통 입음새로 돌아가 현재까지 이른다. 치마길이는 저고리가 길 때는 짧았고 저고리가 짧을 때는 치마가 길었다. 삼국시대 바지의 기본형은 바지통이 좁고 발목에서 대님을 맨 것이었으나, 넓은 바지, 짧은 바지가 있었고, 바지 부리에 이색선이나 동색선을 댄 바지 등이 있었다. 여자도 유와 바지를 입은 모습이 많다. 치마 속에 여러 겹의 바지를 입어 치마를 부풀린 시대는 삼국시대·고려·조선중기이다. 특히 조선중기에는 속속곳·바지·단속곳을 입어 항아리형을 만들었다. 유물을 통해 살펴 본 남자의 사폭바지는 임진왜란 전후에 생긴 것이다. 포의 기본형태는 유와 같으나 길이만 긴 것으로, 종아리 아래 길이이다. 유·고와 유·상 위에 입는 예복용이었다.

체험시간

체험시간 10:00 ~ 18:00 (연중무휴)